📷이콘 화가 이홍구 스테파노 화백 이야기

[기획인터뷰] 상모성당 제단에 흐르는 성화에 얽힌 이야기, 이콘 화백 이홍구 스테파노와 함께한 어느 오후


 취재 및 정리: 상모성당 정보홍보위원회

 취재일시: 2026년 1월 31일 오후 3시


찬바람이 가시지 않은 1월의 어느 날, 우리 상모성당 정보홍보위원회 위원들은 특별한 인연을 찾아 나섰다. 우리 성당 곳곳에 숨 쉬듯 자리 잡고 있는 성스러운 성화들, 바로 이콘(Icon)을 그려낸 이홍구 스테파노 화백의 작업실이다. 여든의 나이에도 여전히 붓을 놓지 않고 기도를 ‘그려내고’ 있는 그와의 대화는, 단순한 인터뷰를 넘어 신앙의 본질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1. 경산의 작업실, 시간이 멈춘 그곳에서의 조우: 이콘,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 형상

경북 경산시 자인면의 호젓한 시골길을 지나 도착한 이홍구 스테파노 화백의 작업실은 세상의 속도와는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강렬하면서도 깊이 있는 색채들이었다. 이 화백은 이콘이라는 단어의 유래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그림 1). 그리스어 ‘이코나(Eikona)’에서 시작해 라틴어, 영어의 ‘아이콘(Icon)’으로 변천해 온 이 단어는 컴퓨터 문명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신앙 안에서의 본질은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아이콘이라는 단어와는 상이한 요소를 내포한다.

“이콘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형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신앙하는 대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기에, 그 보이지 않는 신성을 가시적인 형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이콘입니다.”

그는 이콘을 ‘그린다’고 하지 않고 ‘쓴다’고 표현했다. 그것은 성경을 이미지로 옮겨 적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실적인 미술이 인간 중심의 시각적 즐거움을 쫓았다면, 이콘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나라를 증언하는 전례적 도구다.


 “우리 시대에는 전부 손으로 그렸어요. 그런데 연구를 하다 보니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나오더군요.” 그의 말처럼 작업실 곳곳에 놓인 이콘들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습도와 빛, 심지어 신자들의 사람들의 호흡, 독성물질에도 변하지 않도록 천연 재료를 배합하여 만들어낸 고귀한 신앙의 산물이었다.


2. 그리스에서 보낸 15년의 세월

이 화백이 이콘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은 유럽 북동쪽과 그리스에서의 15년에 걸친 고독한 연구 덕분이었다. 과거의 수도자들이 서명조차 남기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을 위해 그렸던 방식을 따르기 위해, 그는 수백 년 전의 색깔을 재현하는 데 몰두했다.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는 이콘들은 대개 변색된 것들입니다. 습도, 빛, 그리고 성당 안에서 태우는 향과 초, 심지어 신자들이 내뱉는 가스조차 색을 변하게 하죠. 저는 그 당시 수도자들이 처음 붓을 들었을 때의 그 원형의 색이 무엇이었을까를 연구하는 데만 15년을 보냈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안료는 모두 자연에서 온 천연 물질이다. 수입된 귀한 재료들이기에 변색에 강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를 더한다. 그가 보여준 성모자상과 천사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시간이 멈춘 듯한 거룩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금가루를 혼합해 만든 안료로 칠한 황금빛 배경색상은 강렬함의 극치였다.


3. 장애인 자활, 예술로 피워낸 사랑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서 살아온 이 화백이 한국에 들어온 이유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이문희 대주교 시절, 장애인들이 예술을 통해 스스로 자립(자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자 입국했다.

“한국의 복지 시설은 수용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게 하고 싶었어요. 일부러 먼 시내까지 데려가 스스로 문구류를 사 오게 시켰죠. 아이들이 힘들어하며 저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그들이 세상으로 나오는 첫걸음이었습니다.”

그의 제자 중에는 장애를 가졌음에도 훌륭한 이콘 작가로 성장한 ‘발비나’ 자매 같은 이들이 있다. 이 화백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기보다, 그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모습에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회고했다.


4. 상모성당과의 인연, 그리고 전능자 예수님

우리 상모성당과의 인연은 전재천 신부님과의 오랜 친분에서 시작되었다. 유럽에서부터 이어온 인연은 그를 대구대교구 5대리구의 품으로 이끌었다. 상모성당의 이성진 요아킴 초대신부님 때 이홍구 스테파노화백의 이콘제작을 도입하였지만, 전재천 신부님은 신평에서 분가전에 주임신부로, 상모본당의 설립에 여러가지로 관여하였다. 성당 내 ‘전능자 예수님’과 ‘자비의 성모님’, 그리고 ‘십자가의 길’과 ‘바오로 성인상’에는 이 화백의 신앙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상모상당의 이콘성화는 임은공소 건물에서 상모성당 신자들도 직접 작업에 참여했다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설명하였다.

“이콘에는 반드시 문자가 들어갑니다. 예수님의 이름, 성모님의 칭호 등, 이 글자들은 구원의 보증입니다. 특히 전능자 예수님의 손가락 모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형상화한 것이죠. 내 이름으로 너희의 구원을 보장한다는 약속의 표시입니다.”


5. 제단 중앙: 만델리온과 십자가에 담긴 신비

상모성당 제단 중앙에 걸린 웅장한 십자가 상은 성당의 심장과도 같다(그림 2). 이 화백은 이콘의 기원을 설명하며 ‘아케이로포이토스(Acheiropoietos)’, 즉 사람의 손으로 그려지지 않은 형상을 강조했다. 십자가의 길 제6처에서 성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렸을 때 수건에 새겨진 그 얼굴, ‘만델리온’이 이콘의 시작이다.

상모성당 정면 중앙의 십자가 상은 이 신비로운 전통을 계승한다. 화백은 사실적인 묘사에 치중하는 르네상스 미술과 달리, 이콘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형상”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제단 중앙의 예수님은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인 동시에,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하느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응시한다. 이것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해야 할 ‘성서’ 그 자체인 것이다.


6. 제단 우측: 전능자 예수님(Pantocrator)의 약속

제단 우측에 위치한 ‘전능자 예수님’ 이콘은 상모성당 신자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는 작품이다. 이 화백은 이 작품에 담긴 세밀한 상징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성호의 신비: 예수님의 손가락 모양은 단순히 축복을 비는 포즈가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IC XC)’의 이름을 형상화한 것이다. "내 이름으로 너희들의 구원을 보장한다"는 약속이 그 손가락 마디마디에 새겨져 있다.

오메가(Ω)의 의미: 예수님의 후광 속에는 그리스 문자 오메가가 적혀 있다. 이는 시작부터 마침까지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자의 권위를 상징한다.

영혼의 구원: 화백은 이 이콘을 통해 하느님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분이 보내주신 이 형상을 통해 우주와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Ο ω Ν"의 의미:  이는 "존재하는 분" 또는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WHO I AM)"라는 구절에서 유래되었으며 구체적으로, "Ὁ"는 정관사로 "그"를 의미하고, "ω Ν"은 그리스어 동사 "to be(존재하다)"의 현재 분사형으로 "존재하는"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 문구는 예수님의 신성과 영원성을 상징하며, 예수님이 구약의 하느님과 동일한 분임을 나타낸다.


7. 제단 좌측: 자비의 성모님(Eleusa)과 인간적인 의탁

제단 좌측,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은 성모님 이콘 앞에서는 마음이 절로 따뜻해진다. 이 화백은 이 작품을 ‘자비의 성모님’이라 칭했다. 작업실에도 이와 비슷한 작품이 있었는데, 이 이콘의 백미는 아기 예수님의 ‘벗겨질 듯한 샌들’에 있다고했다.

“예수님의 발 하나는 하늘을, 하나는 땅을 향하죠. 너무 바쁘게 뛰어오셨기에 샌들이 벗겨질 듯 탁 걸쳐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 인간이 고통 중에 있을 때, 예수님께서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가장 빨리 달려가 우리를 위해 전구해 달라고 의탁하는 모습이다. “빨리 어머니께 와서 의탁하라”는 이 화백의 설명은 삶의 무게에 지친 신자들에게 큰 위로를 건넨다. 성모님의 금빛 배경은 하느님의 불변함과 빛을 상징하며, 그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안식을 찾는다.


8. 십자가의 길 14처: 고난 속에 피어난 자활의 의지

성당 벽면을 따라 조성된 ‘십자가의 길 14처’는 이 화백이 귀국하여 개인적인 고난을 통과하며 빚어낸 역작이다. 그는 열악한 조건에서도 상모성당 신자들을 위한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이 14처에는 화백이 평생을 바쳐온 장애인 자활에 대한 철학도 스며 있다. 그는 독일과 유럽의 사례를 보며, 장애인을 단순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개척하게 돕는 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깨달았다. 당시 폐공소였던 임은 공소에서 그의 제자들인 발비나, 카타리나 자매에게 이콘을 가르쳤던 그 정성으로, 그는 14처의 한 걸음 한 걸음을 ‘기도’로 채워 넣었다. 신자들은 14처를 돌며 예수님의 고통뿐만 아니라, 그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노화백의 숭고한 인생을 함께 읽게 된다.


9. 에필로그: 시골의 작은 성당에서 마주할 영원한 안식

이홍구 화백은 인터뷰 도중, 외국 생활을 오래한 탓에 한국에 연고도 친구도 없던 그에게 상모성당과 임은공소는 단순한 작업 공간이 아니라, 이콘성화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발돋움의 시작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얼마전부터 정착한 경산시의 자인성당이 작고 소박해서 좋다고 말했다. 화려한 대성당보다 신자들의 숨결이 가까이 느껴지는 곳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싶다는 고백은 숙연함마저 자아냈다. “나는 이 성당에서 죽고 싶다”는 그의 말은, 자신이 남긴 이콘들 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고 싶다는 가장 경건한 신앙고백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이 화백은 유럽에서 가져온 오래된 모카포트로 직접 커피를 내려주었다(그림 3). 덜컥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퍼지는 커피 향은 그의 투박하면서도 진실한 삶의 태도를 닮아 있었다. 암 투병이라는 힘든 시간을 보냈음에도 “지금은 괜찮다”며 웃어 보이는 그에게서 진정한 ‘스테파노(면류관)’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매주 미사를 드리며 마주하는 그 성화들이 사실은 80년 인생을 바친 한 노화백의 기도문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그림 4). 상모성당의 이콘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우리 곁으로 불러오는 창(window)이다.

작업실을 나서는 길, 이 화백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귓가에 맴돈다. “이콘은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입니다. 그 속에 담긴 하느님의 말씀을 읽으세요.” 그것은 사제가 강론을 통해 전하는 말씀과 같은 ‘이미지로 써진 복음’이다.

우리는 이번 방문을 통해 상모성당 제단에 걸린 이콘들이 얼마나 깊은 신학적 고찰과 인고의 시간 끝에 탄생했는지를 확인했다. 80세의 스테파노 화백이 끓여준 진한 모카포트 커피 한 잔처럼, 상모성당의 이콘 성화들은 앞으로도 수백 년 동안 변치 않는 빛으로 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할 것이다.

그림 1 올해 80세인 화백
그림 1 올해 80세인 화백
그림2 우리 본당에 있는 그의 작품들
그림2 우리 본당에 있는 그의 작품들
그림3 직접 내려주신 커피
그림3 직접 내려주신 커피
그림4 그의 기도와 이콘
그림4 그의 기도와 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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